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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가 영영 날아가버리면 여기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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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만한 리더와 막내가 베이스랑 기타로 차력쇼를 하고 그루브며 미모며 핫가이 그자체인 드러머랑 깜찍발랄 꾀꼬리 같은 보컬까지 이 넷이 모여서 아름다운 음악을 해요 미스터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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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2022년 회사를 인수한 직후, 그는 비용 절감을 위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회사 서버를 오리건에 있는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고집했습니다. 트위터 엔지니어들은 이 과정이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머스크는 몇 주 안에 옮기겠다고 고집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불이 남....

tech.yahoo.com/articles/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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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가 쓰는 데이터센터에 배터리 창고가 불이 났다고 함.
일론이 트위터 박살내는 중인지 이미지가 포함된 트윗은 작성시각이 1970년 1월 1일이 되고 이미지가 포함된 트윗을 리트윗 하면 구 알티(RT @~~~~: 원트윗) 형태로 표시된다.
그래도 매번 정신을 차리고 늘 해 오던 대로 계속 일을 했다고, 사운드트랙 피처링 백킹보컬 등등 가리지 않고. 마침내 빌리시언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
앨범을 낼 때마다 전담팀이 공중분해돼 자기가 징크스가 아닐까 싶었다고. 80년대 음반사들 사이엔 한때 대량 해고가 유행이었는데 역시 문화산업의 노조 도입 필요성을 다시 한번...)

좀처럼 닿지 않는 성공을 바라보며 지금처럼 베이 근방에서만 노래하다 라운지 싱어로 남을 운명인가 보다 생각도 한다.
"Cross between Gladys Knight and Paul Rogers" 그가 남긴 소감이다. 전자는 The Empress of soul 후자는 THE voice of hard rock 말이 필요 없는 찬사.

다만 여러 호평에도 불구 에릭마틴은 20대 대부분을 '전도유망'의 상태로 보낸다. 1집 싱글이 마이너 히트를 기록하지만 차트엔 오래 머물지 못했고 2집은 프로모션으로 티나터너와 투어를 돌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변경사항들로 힘들게 하더니 공연 일주일 전 돌연 취소 통보를 날린다.
왜 이렇게까지 빅네임들이 탐을 냈냐면 단연 목소리 때문.

Rythm & bomb, rock 'n soul rebel, a golden rasp blessed with a silky smooth delivery 등등 전부 에릭마틴의 목소리에 대한 묘사, 꽤나 호화스럽다.

그중 90년대까지 가장 자주 인용된 건 보즈스캑스의 말이다. 스티브밀러의 기타리스트이자 그래미위너고 그의 세션밴드가 토토의 전신이었음.

루카서는 멤버들과 종종 에릭의 공연을 보러 가곤 했는데 스캑스에게도 한번 들어보라며 데려간다.
에릭마틴을 데려갈 뻔했던 밴드는 또 있다, 바로 토토.

스티브루카서는 늘 에릭을 마음에 들어 했다. 솔로 1집에도 두 곡에 기타를 쳐줬고 퍼지프레더릭슨 탈퇴 후 보컬로 영입을 시도, 실제로 십여일 정도 토토 멤버들과 같이 지내면서 리허설을 하며 패런하이트 앨범 데모를 녹음하기도 함.

다들 에릭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는데 제프포카로만 너무 풋내기라며 더 커서 오라 했단 후문(이때 이미 스물다섯).
에디는 직접 샌프란시스코까지 행차해 에릭과 잼을 하고 어울리며 각별히 호감을 표했고 엘에이로 오디션을 보러 올 것을 약속한다.

안타깝게도, 엘에이로 향하던 에릭은 공항에서 지독한 부담을 느끼고 겁을 먹은 나머지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이로써 반헤일런 영입 역시 불발에 그친다.
솔로 데뷔 전후론 제법 어마어마한 러브콜들도 받는다.

대표적으로, 존엔트위슬과 닐숀이 런칭하려던 새 밴드에 합류하기도. 84년 여름 쿼우드 별장에 머물며 데모도 녹음한다. 이때 더닝턴페스티벌도 참여하는데 공연에서 반헤일런과 안면을 익히게 됨.

아쉽게도 프로젝트는 불발되지만 얼마 뒤 에릭마틴은 EVH의 전화를 받는다. 리로스가 반헤일런을 떠났을 시기다. 노래는 구리지만 네 목소리는 좋다고 같이 밴드를 하지않겠냐고 물었다고.
블스에도 새해 첫곡과 함께 인사남깁니다👀

open.spotify.com/track/20oT2n...
EMB Live from Hawaii '83

83년 9월 1일~6일 저니 하와이 투어 오프닝 중 마지막 공연(추정)이고 84년 2월 24일 샌프란시스코핫락 방영분 레링잇아웃

고화질로 갖고 있는데도 블스 영상 업로드의 한계로 유튜브의 힘을 빌려야함😞

youtu.be/Do2RcZu_ui4?...
다행히 에릭마틴은 바로 캐피톨과 솔로 레코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A&R팀은 에릭이 제2의 마이클볼튼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실제로 이때 볼튼과 친해졌고 1집에 커버곡을 수록하기도 함.
EMB의 데뷔 앨범은 Bammies(Bay Area Music Awards) 신인상을 받는다. 이후에 지지탑, 나이트레인저 등과 투어도 다수 돌지만 음반 판매량 같은 성과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음반사 상황도 좋지 않아서 멤버들은 낙담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밴드를 하나둘 떠나게 된다, 드러머는 테슬라로 기타는 Y&T로 감.
EMB가 데뷔 당시 주목받았던 점들 중 하나, 바로 밴드 저니와 매니저, 프로듀서를 공유하는 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른바 한솥밥 먹는 사이. 실제로 83년 저니 프론티어스 투어 하와이 5회 공연에 EMB가 서포트 액트를 맡기도 했고 자료화면도 남아있다.

+
에릭마틴이 정말 꾀꼬리 같은 라이브! 들어보면 빌리시언의 마음을 이해 가능!
몇 번의 라인업 변경 후에 에릭마틴은 415란 그룹으로 활동한다, 샌프란의 지역번호임. 명실공히 베이의 가장 핫한 신예 밴드로 자리 잡았고 83년 엘렉트라와 계약하면서 Eric Martin Band로 데뷔도 하게 된다(보컬 이름을 따라가는 게 유행이었고 415와 동명의 음반사가 있어 소송을 미연에 방지했어야).
생일날 못챙겼지만 울집미남 71살 됐어요🥹
양배추 무침이요.. 써는 거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정신이 산만하긴 한가봐요🫠
칼질하다 손 베임😞
할배네 고냥이들 털 때깔봐🫠
흥이 나는 노래를 좀 들어보려다 내적 외적 상황과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밥딜런과 오코너를 듣게됨 의도치않은 평화기원플리
에릭마틴이 처음으로 프런트한 밴드는 샌프란시스코의 키드커리지. 76년부터 베이로 오는 모든 락밴드 공연 오프닝을 도맡는다. AC/DC의 첫 미국투어 때도 같이 무대에 섬.
계속 드럼을 치고 싶었지만 사실 좀 버거웠다고 한다. 한번은 보컬이 합주에 빠져서 대신 노래를 한 적이 있는데 밴드 전체가 놀람. 그리고 잔인한 사실을 알린다 Your drum sucks and your singing's way better, 그렇게 에릭마틴은 가수의 길을 가게됩니다(다행이다)
첫 밴드도 드러머로 시작한다. 이름은 The Buzz, 군부대 극장에 세르지오멘데스&브라질'66가 공연을 왔을 때 오프닝으로 처음 제대로된 무대에 서보게 된다. 버디리치의 드럼솔로를 쳤다고.
아버지는 원래 드러머였으나 첫째인 에릭마틴이 태어나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군인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나 생일이면 어린 에릭에게 하나씩 작은 드럼들을 선물하고 치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한편, 학교를 자주 옮겨다녀서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렵고 내향적인 면도 있었다. 에릭이 열다섯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돌아와 온가족이 새크라멘토에 정착해 살게되었기 때문에.

거실에 두던 피아노를 새크라맨토의 집에선 다락으로 보내야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땐 다락방에 들어가 피아노를 치면서 허밍으로 노래를 만들곤 하는 작은 음악가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