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성행위고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성애는 다르다. 일종의 비밀이며 범위가 넓은데,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경험들은 모두 내 범위 내에서 감출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인 관계보다 더 은밀하다.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는 건 자신의 성애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영화 벌새가 그렇다. 영지 선생님 방에서 손가락를 펼쳐 보는 장면이 그렇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성애로 가득하다.
2021년에 발매한 악뮤 NEXT EPISODE를 그해의 앨범으로 선정했는데 2025년에는 이찬혁 두 번째 정규 앨범 EROS가 올해의 앨범이다. 편곡, 가사, 장르 소화력 모두 좋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악뮤 이찬혁 이수현 앨범에는 명확한 비전이 있다는 것. VIVID LALA LOVE는 이렇게 철학적인 노래가 대중가요로 나왔다는 게 놀랍고 최고로 좋다. 에로스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좋다. 널리 쓰였으면 하는 단어다. 우리말로 쓰자면 성애고 난 이 성애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