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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자유낙하가 될 수 있다."(앤 카슨)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진다는 말(근데 애초에 사랑에 있어서 이긴다 진다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 이기고 지는 거, 이거 사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 아닌가?)이 있지만 난 그렇지 않아고 생각해. 만약 사랑에 이기고 지는 게 존재한다면 아마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은 언제나 이기는 거라고, 지더라도 이기는 걸 거라고. 왜냐하면 사랑을 통한 확장(나의 확장이든 세상의 확장이든 그러한 확장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사랑으로 인해 일어나는 그 모든 확장들)이라는 면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은
September 15, 2025 at 5:42 AM
확실히 나는 좀 투박한 데가 있지 서툴고. 세련과는 거리가 있음 근데 뭐 멀어도 괜찮아 투박함의 사랑스러움을 아니까. 거창하게 생각할 줄 모른다 그래 그것도 괜찮아. 사랑은 결국 작은 것들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좀더 작은 것 좀더 희미한 것. 내가 다아 바라봐줄게
September 3, 2025 at 2:17 AM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관두었다.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아무튼 사람은 언제나 조금씩은 잘못을 한다"(카뮈, 이방인)
September 2, 2025 at 4:58 PM
지하철 타고 가다 지상 구간 진입하면 마음에 작은 조명이 켜진다. 오늘은 하늘이 구름이 말도 못하게 아름다워 내가 탄 지하철이 현실 세계의 목적지로 가는건지 아니면 어떤 이상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왜 눈물이 날까.(그러니까 이건 토요일의 구름)
September 2, 2025 at 4:56 PM
"나는 걷고 또 걷고, 추억하고, 어렴풋이 느끼고, 잊어버리고, 집중하고, 재발견하고, 헤맬 것이다."(필리프 자코테,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September 2, 2025 at 4:54 PM
쇼팽 피협 듣다가 펑펑 울었는데 어째서일까.(궁금하면 다시 들어보렴)
September 1, 2025 at 2:59 PM
근데 나는 무교이고 평생 종교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가 없어도 종교적일 수 있지 않을까. 종교가 있어도 종교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엄, 말이 꼬이네 아무튼)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종교적이라는 말은 영적이라는 말에 좀더 가까운 걸까.
September 1, 2025 at 9:41 AM
가끔 새벽에 깨면 이상하게 머리가 맑을 때가 있다. 맑다기보다는 고요하다고 해야할까. 새벽과 제일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난 새벽을 동경하는 것 같기도. 풀벌레 소리도 깊어진다.
August 30, 2025 at 7:59 PM
알아본다는 건 무얼까. 읽히고 싶다는 욕망은 또 무얼까. 고유함이란.
August 30, 2025 at 7:57 PM
클라이밍하는 꿈 꾸었다. 근데 완등 바로 직전에 뭔가 자꾸 일이 지연되어서 그리고 내가 또 상황 파악을 잘 못하고 어리숙하게 굴다가 혼났음. 근데 전에도 생각했지만 꿈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결국 다 나잖아. 혼내는 인물도 나고 혼나는 인물도 나잖아.
August 30, 2025 at 1:44 AM
그렇지만 쓴다는 게 다 무어야. 글이 다 무어야
그런 건 다 소용없어, 라고 또다른 삐딱한 내가 외치는 것이다.
August 29, 2025 at 3:26 PM
졸린데 잠안자고 꾸벅꾸벅 조는 아이처럼 혹은 강아지처럼 졸린데 이미 반쯤 잠이 내렸는데 어쩐지 버티고 있다. 밤에 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려고 나갔는데 아무것도 안가지고 나갔더니 이 순간을 노렸다는 듯이 한바탕 비가 쏟아지네. 어쩔 수 없이 남의 집 처마에 쪼그리고 앉아 비그었다. 비긋는다는 말 오랜만. 우산 없어서 이렇게 처마로 뛰어든 것도 오랜만이긴 하다. 비 맞아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웅크리고 앉아 가로등 빛 안에서 왁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바라보며 생각한다. 뭐 이렇게 잠시 있는 것도 좋다. 삶의 어떤 느닷없는
August 29, 2025 at 3:22 PM
고양이 키우는 꿈을 꾸었다. 집 주변에서 살아가던 길고양이였는데 창문을 열어 들어오게 했더니 자연스럽게 원래 자신의 집인 듯 들어왔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역시 자연스럽게) 내 배 위로 올라와 편안하게 자리잡았고 함께 잠들었다. 다음날 동물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더니 다음 장면이 벌써 동물병원.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께 인사드렸다. 이제부터 또 자주 뵙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고 마음대로 밖을 돌아다녀도 되지만 잠은 집에 돌아와 자라고 말해주었다. 유유히 걸어가 열어둔 공간 사이로 사라졌다.
July 24, 2025 at 2:15 AM
독서에 대해, 머리와 마음이 스펀지인 시기가 있고 가시 잔뜩 달린 고슴도치인 시기가 있다. 지금은 아무래도 스펀지의 시기인 듯 얼마나 오래갈지는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이것저것 펼쳐놓고 읽는 책들에 계속 마음이 녹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이렇게 좋은 글을 읽다 잠들고 이렇게 좋은 글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쁘고 조마조마한 나날들.
June 12, 2025 at 4:31 PM
맞다 나는 내가 비판적 지성이 좀 부족한 독자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 우선 나는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타입이고 (책이든 사람이든 사건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커다란 나무 옆에 앉아 빛그물 일렁이는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 쪼그리고 앉아 발 아래에서 흘러가고 있는 작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타입이니까. 뭐든 작은 거 하나만 반짝여도 마음이 녹아. 그래서 이것저것 딴 데 정신 팔려 있다가 결국 숲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어쩌다 한번 굳게 마음을 먹고 숲의 지도를 그려보겠어! 외친대도 일이 빨리 진행되지는 경우는 없지. 게다가
June 12, 2025 at 4:25 PM
고약하구나
May 8, 2025 at 3:04 PM
자아를 조금도 걷어내지 않은 글은 읽기 힘들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그런데 이 단어는 어렵고 애매하지, 똑바로라니, 그런 게 과연 있나?) 바라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테지만 그래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가능하지. 자아는 대체 뭔데 사람을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까. 사람은 왜 가벼워지지 못할까. 왜 개나 고양이처럼 존재 자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갖지 못할까.
May 6, 2025 at 3:15 PM
아니 나 조금 괴로운데, 100여쪽 분량의 작품 3분의 2정도 읽었으니 그냥 마저 읽는 게 낫지 생각하면서도 계속 진짜 읽어야 돼? 이거 읽어야 되나? 머뭇거리게 만드는 이 문장들 어쩔거예요.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독자는 아니라고요. 조금 기대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어도 실망인 건 좀 그렇잖아. 아니지 그럴 수도 있지. 읽기라는 건 언제나 실망 또는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어쩌면 모든 읽기 그러니까 성공한 읽기(그런게 존재한다면) 역시 실패를 품은 채로 성공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치 그런데 이제 그건 실패를 품은 채 실패했을 때의
May 1, 2025 at 1:34 PM
하염없이 무언가를(그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채)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누가 바라봐주지 않아도 그저 홀로 무심히 피어있는, 사람의 눈길이 쉬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한들거리는 소박한 꽃 한 송이처럼 "그렇지만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없이 속삭이며 흔들리고 싶은 그런 때.(세탁기가 다 되었다고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끼어든다)
May 1, 2025 at 9:14 AM
모자를 잃어버렸다. 분명 손에 들고 있었는데 없다. 손에서 놓친 기억이 없는데 빈손이다. 내가 나한테 눈뜨고 코 베이기도 하는구나.

"이 속담은 다산 정약용이 편찬한 속담집 ‘이담속찬’에 담긴 ‘울목불극 혹상궐비( )라는 글귀에서 유래된 말인데 ‘눈 깜빡임을 빨리하지 않으면 코를 잃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세상이 험하니 항상 주의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영어에도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의미의 ‘Be caught like a sitting duck’이란 속담이 있는데 모두 같은 의미이다"
April 23, 2025 at 4:23 PM
자연의 초록을 아주 오래 보고 나면 자연을 벗어난 후에도, 삭막한 무채색의 공간 안에서도 눈앞에 초록의 환영이 보인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꺼풀 안쪽에 초록색 잔영이 어른거린다.
April 23, 2025 at 4:13 PM
사실 걸으면서 하는 독서를 안한지는 꽤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즐거운 밤산책이었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와갈 때쯤 기분좋은 발걸음으로 산책하며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 강아지를 구경하다가 강아지가 무심코 취한 몸동작에서 나의 강아지를 떠올리고는 또 울고 말았다. 다행이지 그래도. 네가 여전히 나의 사소한 일상에 존재한다는 게.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하며 독서 유튜브를 조금 들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았다. 독서는 내가 직접 해야 재밌는거지 남이 한 독서 얘기 듣는 건 별로 재미없는 것 같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말.
October 17, 2024 at 4:26 PM
말을 더 얹고 싶어하는 편은 아니라 가만히 있었지만 덩달아 맘이 싱숭생숭해져서 여기도 오랜만에 들어와본다. 저녁에 친구가 과일 준다며 찾아왔고 그런 김에 함께 걸었다. 아직도 낮은 더운 편이지만(그러고 보면 뭐뭐하는 편이지만...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구만) 밤이 들면 그래도 얼굴에 와닿는 공기가 제법 기분 좋아 친구와 두런두런 얘기하며, 지나는 골목의 건물들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제법 커다란 달도 바라보며,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걷기라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며 걸었다. 친구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좀 적막한 기분이
October 17, 2024 at 3:54 PM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에 서툴다. 아마도 살아가는 내내 그러겠지만.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마음적인 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를 꺼내들게 되는가보다. 그러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는데, 별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행동이 있다. 나한테 그런 생각을 하게 하지 말라고. 자꾸만 뒷걸음치다 결국엔 혼자 남는다. 사람들은 피곤해, 라고 생각하며 결국 책을 집어드는 이유가 자꾸만 생긴다는 것. 그게 좋다는 게 아니라 그게 너무 슬프다.
March 26, 2024 at 1:17 AM
타인의 해석에 대해 '그게 아니다'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생각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섬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섬세함에 취해 무뎌지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두루 돌아보며 섬세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늘 조심할 필요는 있다고. 나의 섬세한 생각이나 감수성을 표현하기 위해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생각을 그르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February 29, 2024 at 5:22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