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변기 아랫부분까지 거울로 비춰가며 열심히 청소하는 히라야마에게 젊은 동료 다카시는 이렇게 핀잔을 준다.
"히라야마씨,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말이에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적어도 히라야마에게는. 곧 더러워지더라도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최선을 다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보석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비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순간일지라도. 어쩌면 그 순간들이 바로 진정한 '퍼펙트 데이'일지도 모른다.
"히라야마씨,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말이에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적어도 히라야마에게는. 곧 더러워지더라도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최선을 다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보석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비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순간일지라도. 어쩌면 그 순간들이 바로 진정한 '퍼펙트 데이'일지도 모른다.
July 2, 2024 at 10:03 AM
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변기 아랫부분까지 거울로 비춰가며 열심히 청소하는 히라야마에게 젊은 동료 다카시는 이렇게 핀잔을 준다.
"히라야마씨,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말이에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적어도 히라야마에게는. 곧 더러워지더라도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최선을 다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보석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비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순간일지라도. 어쩌면 그 순간들이 바로 진정한 '퍼펙트 데이'일지도 모른다.
"히라야마씨,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말이에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적어도 히라야마에게는. 곧 더러워지더라도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최선을 다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보석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비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순간일지라도. 어쩌면 그 순간들이 바로 진정한 '퍼펙트 데이'일지도 모른다.
“내 작품이 좋다는 확신은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글을 쓰기 시작할 땐 완벽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말대로 우린 좀 더 나은 실패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RIP.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 - 2024)
RIP.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 - 2024)
May 1, 2024 at 8:25 AM
“내 작품이 좋다는 확신은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글을 쓰기 시작할 땐 완벽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말대로 우린 좀 더 나은 실패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RIP.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 - 2024)
RIP.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 - 2024)
영화 <유브 갓 메일, 1998>에는 캐슬린 켈리(배우 맥 라이언)가 인터넷 대화상대인 조 폭스(배우 톰 행크스)가 보낸 메일을 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이 대사가 나온다.
"그 순간만큼은 뉴욕의 소음도 들리지 않아요. 거리의 소음도 안 들리죠. 오로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뿐.”
행복은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틀리고 맞고의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행복은 신념이자 믿음, 무엇보다 기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뉴욕의 소음도 들리지 않아요. 거리의 소음도 안 들리죠. 오로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뿐.”
행복은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틀리고 맞고의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행복은 신념이자 믿음, 무엇보다 기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January 13, 2024 at 2:55 AM
영화 <유브 갓 메일, 1998>에는 캐슬린 켈리(배우 맥 라이언)가 인터넷 대화상대인 조 폭스(배우 톰 행크스)가 보낸 메일을 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이 대사가 나온다.
"그 순간만큼은 뉴욕의 소음도 들리지 않아요. 거리의 소음도 안 들리죠. 오로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뿐.”
행복은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틀리고 맞고의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행복은 신념이자 믿음, 무엇보다 기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뉴욕의 소음도 들리지 않아요. 거리의 소음도 안 들리죠. 오로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뿐.”
행복은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틀리고 맞고의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행복은 신념이자 믿음, 무엇보다 기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 2018>
타인의 이면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때로 힘들다. 그 삶에서 나도 예외는 아닐 터이니. 그 타인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 영화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이 대사는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이 있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게 오늘이다 싶으면 그냥 가. 그게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고.”
타인의 이면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때로 힘들다. 그 삶에서 나도 예외는 아닐 터이니. 그 타인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 영화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이 대사는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이 있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게 오늘이다 싶으면 그냥 가. 그게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고.”
November 12, 2023 at 7:19 AM
영화 <완벽한 타인, 2018>
타인의 이면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때로 힘들다. 그 삶에서 나도 예외는 아닐 터이니. 그 타인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 영화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이 대사는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이 있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게 오늘이다 싶으면 그냥 가. 그게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고.”
타인의 이면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때로 힘들다. 그 삶에서 나도 예외는 아닐 터이니. 그 타인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 영화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이 대사는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이 있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그게 오늘이다 싶으면 그냥 가. 그게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고.”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대표적인 문장.
도대체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모습은 인간 실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허위와 위선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안 그런 척했던 삶, 삶, 삶.
다자이 오사무처럼 솔직하고 싶었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가 갖고 있는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순간으로 그쳤다. 나를 돌아보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다.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대표적인 문장.
도대체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모습은 인간 실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허위와 위선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안 그런 척했던 삶, 삶, 삶.
다자이 오사무처럼 솔직하고 싶었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가 갖고 있는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순간으로 그쳤다. 나를 돌아보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다.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이다.
August 27, 2023 at 11:16 AM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대표적인 문장.
도대체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모습은 인간 실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허위와 위선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안 그런 척했던 삶, 삶, 삶.
다자이 오사무처럼 솔직하고 싶었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가 갖고 있는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순간으로 그쳤다. 나를 돌아보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다.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대표적인 문장.
도대체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모습은 인간 실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허위와 위선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안 그런 척했던 삶, 삶, 삶.
다자이 오사무처럼 솔직하고 싶었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가 갖고 있는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순간으로 그쳤다. 나를 돌아보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다.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이다.
"不在(부재)가 無(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존 버거의 <A가 X에게>에 나오는 글. 무(無)란 원래부터 없었던 거고, 부재(不在)는 있다가 사라진 것.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지금 없어도 딱히 아쉬울 게 없지만 있다가 없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어떤 '부재'가 주는 상실감은 크다. 때로 존재 전체를 충격할 정도로.
존 버거의 <A가 X에게>에 나오는 글. 무(無)란 원래부터 없었던 거고, 부재(不在)는 있다가 사라진 것.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지금 없어도 딱히 아쉬울 게 없지만 있다가 없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어떤 '부재'가 주는 상실감은 크다. 때로 존재 전체를 충격할 정도로.
August 22, 2023 at 11:55 AM
"不在(부재)가 無(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존 버거의 <A가 X에게>에 나오는 글. 무(無)란 원래부터 없었던 거고, 부재(不在)는 있다가 사라진 것.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지금 없어도 딱히 아쉬울 게 없지만 있다가 없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어떤 '부재'가 주는 상실감은 크다. 때로 존재 전체를 충격할 정도로.
존 버거의 <A가 X에게>에 나오는 글. 무(無)란 원래부터 없었던 거고, 부재(不在)는 있다가 사라진 것.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지금 없어도 딱히 아쉬울 게 없지만 있다가 없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어떤 '부재'가 주는 상실감은 크다. 때로 존재 전체를 충격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