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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동료의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조리흄’은 아직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물질로 공식 지정되지 않았다.
유해물질로 지정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는 치명적이다. 작업장과의 인과관계는 인정하면서 노동자들이 암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지원은 하지 않는 격이다.
November 10, 2025 at 11:12 PM
그때부터 세탁기에는 영옥 씨의 양말로 가득 찼다. 약의 부작용으로 퉁퉁 부은 발에서 진물이 나왔다. 성준 씨는 그 시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항암약 부작용인지 발이 퉁퉁 부어서 잘 못 걸었어요. 매일 운동했던 사람인데…. 양말 안 신으면 엄마가 지나간 자리 바닥에 발자국이 남았어요.”
November 10, 2025 at 11:12 PM
그리고 반년 만인 그해 11월, 산재 승인 통보를 받았다. 약 20년의 장기 근무가 산재 인정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때문에 병이 자란 셈이기도 했다.
그때 영옥 씨의 병세는 악화되고 있었다. 약에 내성이 생겼다. 여러 번 약을 바꿨지만 기적이 일어나진 않았다. 급속도로 병색이 짙어졌다.
November 10, 2025 at 11:12 PM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문제가 가시화된 건 2021년.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일하던 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한 사건이 산재로 인정되면서, ‘조리흄’이라는 발암물질의 위험성이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이때가 학교 급식 노동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November 10, 2025 at 11:12 PM
동료들이 영옥 씨를 걱정했던 건 허리, 어깨, 다리, 무릎과 같은 관절이 “멀쩡하지 않아서”였다. 그 누구도 영옥 씨가 암에 걸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수 년 전 이곳에서 일하던 동료가 폐암으로 죽었지만, 그게 조리실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November 10, 2025 at 8:39 AM
영옥 씨는 그해 5월 20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성모병원에서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발견 당시 뼈와 뇌까지 암세포가 전이된 상황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매년 건강검진을 해왔다. 보건증 발급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상 없던 몸에 왜 갑자기 악성 종양이 나타난 건지 알 수 없었다.
November 10, 2025 at 8:39 AM
베테랑 조리 실무사의 몸은 성한 구석이 없었다. 2021년 4월의 가슴 통증도 여느때와 같은 통증이라고 여겼다. 병원에서 약이라도 처방받을까 고민했지만, 대체인력을 구할 수 없었다.
병원 가겠다고 연차라도 쓰면 그 사람의 몫을 잠은 동료들이 더 해내야 했다. 그는 학교 재량휴업일까지 기다렸다.
November 10, 2025 at 8:39 AM
매일이 ‘전쟁통’이었다.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고, 손은 늘 부족했다. 약 900인분의 식사를 책임지는 건 영옥 씨와 다섯 명의 동료들이었다.
한창 일할 때는 힘들어할 여유도 없다. 식용유 타는 냄새가 지독하고, 연기에 눈이 맵고, 무거운 집기를 들다 허리를 삐끗해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November 10, 2025 at 8:39 AM
후세들은 유희의 생을 어떻게 기억할까.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이 야만의 시대를 끝장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야만의 시대를 끝장낸다는 건 모두가 평등하게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밥은 하늘이고, 밥은 힘이고, 밥은 사랑이다.”
November 7, 2025 at 2:03 AM
유희가 생전에 가장 많이 한 말이 그녀의 묘비명이 됐다.
“‘밥은 하늘이다.’ 딱 한마디다. 밥은 하늘이라는 걸 가슴에 새겨달라. 밥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거다. 다 같이 밥을 먹기 위해서는 너도 십시일반하고 나도 십시일반해서 이 하늘을 서로 나누는 거지.”
November 7, 2025 at 2:03 AM
“옆에서 엄마가 하는 일을 많이 봤지만, 솔직히 ‘(사회)운동’ 이런 쪽은 싫었어요. 엄마가 고생하는 게 싫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구나’ 싶어요. 엄마가 가시면서 알려주신 것 같아요. 또 한 번 교훈을 주신 것 같아요.”
November 7, 2025 at 2:03 AM
“투병 중에도 ‘밥묵차’를 나가셨거든요. 마약성 진통제까지 드실 때니까 (엄마가 나가는 게) 너무 싫은데, 막상 같이 가보면 ‘말리면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이게 엄마 삶의 이유구나. 엄마는 이걸로 힘을 얻는구나.’ 그래서 저도 몇 번 쫓아다녔죠.”
November 7, 2025 at 2:03 AM
투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밥값을 갚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졌다. 철마다 피는 꽃들을 계속 보낸 사람, 한우며 산나물이며 과일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선물을 보낸 사람들.
“전국을 돌며 먹여주신 밥그릇 수만큼은 더 사셔야 합니다. 아마 100년은 되겠지요?”
November 7, 2025 at 2:03 AM
유희는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걱정돼서 밥을 지어 찾아갔고, 청민은 그런 엄마가 걱정돼서 엄마의 ‘출동’에 함께했다. 그 옛날 꼬마 ‘짱구’가 엄마의 노점으로, 전노련 사무실로, 집회 현장으로 따라다녔던 것처럼, 어른이 된 청민은 여전히 엄마와 함께였다.
November 6, 2025 at 1:15 AM
“우리 집이 가난하단 건 알았죠. 그렇다고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엄마 따라다니면서 노점상 분들, 치열하게 사시는 분들을 많이 보고 어울렸던 거잖아요. ‘이렇게 새벽까지 열심히 사는데 그게 왜 창피한 거야?’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November 6, 2025 at 1:15 AM
도시락도 직접 싸다녔다.
“포장마차 할 때가 좋았죠. 팔고 남은 안주를 반찬으로 싸갈 수 있으니까. 제일 많이 싸간 게 꼼장어예요. 그때 생긴 별명이 ‘꼼장어’라서, 지금도 제 아이디 같은 건 다 ‘꼼장어’예요.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금수저 느낌인가?(웃음)”
November 6, 2025 at 1:15 AM
단속 완장을 찬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다. 단속반이 오면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지고, 마차를 끌고 가고, 또 며칠 뒤에 벌금을 내고 찾아와서 또 장사를 하고.
“그렇게 충격 받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덤덤했어요. 그냥 ‘그렇구나, 이게 삶이구나’ 받아들인 거.”
November 6, 2025 at 1:15 AM
청민이 고등학생 때, 포장마차를 ‘펼치는’ 건 청민의 몫이었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오후 6시. 학교를 마친 청민이 엄마를 대신해 포장마차를 열었다.
꼬박 열두 시간 장사를 하고 다음 날 새벽 대여섯 시에 포장마차를 접는다. 그때까지 청민은 엄마를 도왔다.
November 6, 2025 at 1:15 AM
현재 친환경농업은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꼽힌다. 더 많은 농민들이 친환경 농사를 더 많이 지을수록 땅은 살아날 수 있다.
“에코백이나 텀블러를 늘 가지고 다니려고 하는 노력만큼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하려는 노력을 하면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겁니다.”(홍안나 사무처장)
November 3, 2025 at 11:08 PM
동시에 지주들을 대상으로 보상적 접근도 필요하다. 지주와 임차농의 ‘상생’을 위해서다.
“지주가 친환경 농업인에게 땅을 빌려주는 걸 가치 있게 생각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지주와 임차농의 관계가 대등해질 수 있습니다."(최동근 국장)
November 3, 2025 at 11:08 PM
직불금 제도가 확립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부정수급 단속’과 ‘세금 환수’가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촌사회 전반에 ‘농사짓지 않는 지주들이 임차농을 대신해서 직불금 받으면 큰일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November 3, 2025 at 11:08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