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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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ukinohollow.bsky.social
레비
@susukinohollow.bsky.social
쫓겨나듯이 도망쳐 옴
이런 말을 하면 흔히들 반동적인 언행을 일삼는 한국힙합의 일면 같은 것을 떠올리며 “모든 혐오에 반대한다”는 수사의 정당성을 내비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사회가 금기시하는 존재 사건 소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느냐 안 하느냐 또한 포함된다. 실재하지만 시야 밖에 있는 존재들과 실재하는 폭력과 혐오에 대해서는 음악 내적으로 일언반구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감히 스스로에게 “천박함”이라는 수식을 쓸 생각을 하는가? 이런 모순과 기만에 정말이지 나는 지쳐버렸다…
December 21, 2025 at 9:43 PM
그런 점에서 00년대와 비교했을 때 10년대 이후의 힙합이 더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은 쇼미더머니 버블로 인한 씬의 팽창 때문에 그런 부분이 더 도드라지는 것일 뿐 마냥 또 그렇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구권 힙합의 하위장르를 좋은 퀄리티로 만들어낸 앨범들은 훨씬 더 늘어났고, 가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뮤지션들은 여전히 본인만의 개성을 갖고서 음악을 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한국힙합의 천편일률성은 보다 더 넓게, 시장의 문제 또는 사회의 문제로 확장해서 바라봐야한다.
December 19, 2025 at 6:33 PM
반면에 소울컴퍼니와 빅딜 레코즈 같은 경우는 텍스트적으로는 한국힙합 태동기의 풋풋함이나 조악한 정서가 그만의 독특함을 주기는 하지만 프로덕션적으로 보았을 땐 냉정하게 말해서 90년대 동부 힙합/하드코어 힙합의 열화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아마도 00년대 한국힙합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주로 텍스트적인 부분을 두고서 이야기하는 것도 있겠지만, 10년대 이후의 한국힙합이 텍스트적으로 천편일률적인 것은 씬과 씬이 영향 받는 사회가 좀 더 모노톤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December 19, 2025 at 6:29 PM
에픽하이는 타블로 본인이 갖고 있는 가요적 감성을 기반으로 당대 제이팝과 전자음악 그리고 붐뱁을 섞어 걸출한 얼터너티브 팝 랩을 선보였고 다이나믹 듀오는 아마도 당대 힙합 프로듀서들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샘플링 감각을 기반으로 록이나 블루스, 소울에서 들을 법한 긴장감 있는 진행의 명곡들을 만들어냈고 리쌍은 이 중에서 가장 구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가요 랩을 길 특유의 서정적인 정서와 멜로디로 착색해서(보컬의 힘이 크다고 볼 수 있는) 뭐랄까, 빈티지한 감성을 더해줬다(이 표현이 좀 구리지만).
December 19, 2025 at 6:24 PM
한국힙합에 대한 논쟁 중에 꽤 잦은 축에 속하는 00년대의 독창성(?)과 10년대 이후의 천편일률함에 대한 담론을 생각해보면, 일단 프로덕션적으로만 보았을 때 00년대 한국힙합이 독창적이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가요의 영역에 들어서 있던 힙합 뮤지션들은 상당히 개성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December 19, 2025 at 6:24 PM
그리고 안녕, 에리를 애니로 만드는 건 이건 정말이지 씨발롬들이 돈에 미쳐가지고 정말 그런 걸작을 어떻게 애니로 만들려고 이건 실사화를 해야만 한다 물론 실사화라고 대단한 건 아니죠 룩백 실사화만 봐도 망삘이 강하게 오잖아 근데 안녕, 에리는 실사화를 해야 의미가 있다고 정말 개쩌는 감독(개인적으로 타나다 유키가 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함)이 연출하면 이건 진짜 걸작이 나올 거라고 하지만 다들 돈이나 벌고 싶겠죠 걸작이 뭔 상관이겠어요 아하하
December 19, 2025 at 5:14 PM
저는 칸예나 푸샤티 듣기 시작하면 ㄹㅇ 좆됐다고 느껴요
December 19, 2025 at 11:13 AM
그런 사람들이 글 쓰고 그러는 거죠
December 19, 2025 at 7:53 AM
아 딱 프루 가고 싶은 날씨네요
December 18, 2025 at 7:27 AM
저와 역사가 깊은 사람 한 분이 계시죠
December 18, 2025 at 6:38 AM
실질적인 가치를 배제한 채 모든 게 기분에 의해 판단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혹은 진보당이든 피할 수 없는 맹점이며 한국 20대 남성들이 부리는 생떼 또한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망상에서 기인한 기분을 달래달라는 투정이다.

그러나 내가 왜 여기서 줄곧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판을 해왔느냐면 그들에게는 그나마 다른 호모소셜들에 비해 희망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짧게 정리해서 “파시즘”에 경도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December 17, 2025 at 6:25 AM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나를 여성혐오자라고 힐난하고 싶겠지만(객관적으로 판단하지면 나는 확실히 여성혐오자가 맞긴 하다) 다시 한 번, 앞서 말했듯이 기분이라는 것은 정체성 이념 계급을 초월하는 것이고 즉 내가 비판한 정의의 변질과 호모소셜 내의 무비판적인 결속은 한국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당장 국민의힘은 작년 윤석열 탄핵소추안 2차 투표에서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 때보다 훨씬 적은 수가 이탈했으며 내란에 반성하는 세력을 밀어내고 후안무치한 입장과 행동만을 보이고 있다.
December 16, 2025 at 5:48 AM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도달한 것은 페미니즘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그것이 가부장제적인가” 또는 “그것이 여성을 제도적으로 억압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기분 나쁜가“로 변질된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초기에 남성들이 자신은 여성을 사랑하기에 여성혐오적이지 않다는 개소리를 하자 여성혐오에서 ”혐오“란 감정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적인 억압”이라고 말했던 컨센서스는 휘발되고 이것이 여성인 자신이 느끼기에 혐오스러운가 아닌가로 변질된 것이다.
December 16, 2025 at 5:48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