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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발표 및 연재, 출간작: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ExQYGCZu4-IkRwzccoZVV8qyRwD4KEtShrKeVY4fOkA/edit#gi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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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il-kim.com
"왜"를 거듭해서 물으면 이른바 제1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아리스토텔레스 개념이긴 하지만 기독교랑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왜 세상은 고통스러운가?" 하는 질문은 끝내 제1원인에 닿게 되고, 기독교에는 거기 준비된 답이 있다. 한편 불교는 "왜"를 묻지 않고 "어떻게"를 묻는다. "세상이 고통스러운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런가 하면 유교는 "나중에 말고 지금 당장 어떻게"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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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고유한 스타일이란 이런 레퍼런스의 조합에서 오는 것이고 진정한 오리지날리티가 허상이라는 걸 깨닫는 지점이다. 각각의 단계는 그 작가의 성공이나 심지어 그 작가의 온전한 글쓰기 역량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오래 쓰고, 더 나은 글을 쓰고자할수록 세 번째 단계에 가까워지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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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에선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방향이 있지만 시장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작품을 접는 작가들도 흔히 있다. 세 번째는 다른 작품들을 기반으로 해서 자유자재로 글을 쓰는 작가들을 말한다. 문장마다 인용을 내세우고 자신의 글의 세부 요소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작가들이 여기에 있다. 카피는 좁은 시야에서 비롯되어 하나의 작품, 하나의 작가를 베끼는 것에 급급하지만 레퍼런스를 이용해 글을 쓴다는 건 수 많은 작품, 수 많은 작가로부터 자신의 글이 비롯된다는 걸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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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다른 작가들과 구분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을 가진 작가다. 제도권 소설, 즉 등단을 한 작가가 청탁을 받으며 활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작가들과 구분되는 확연한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당연히 청탁을 받을 수 없다. 다만 이런 스타일은 고착화 되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글쓰기 방식이 최적화 되어 좋은 말로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지만, 나쁜 말로는 자기 복제를 통해 발전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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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베꼈는지 숨기고자 하는 표절과는 다르게 무엇을 베꼈는지 조차 모르거나, 또는 자신이 베낀 작품의 작가와 동등한 선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용인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는 프로 작가를 찾기 힘들지만 웹소설과 같이 서로 닮는 것이 용인되는 시장에서는 카피를 통한 성공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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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남을 카피하는 단계고, 두 번째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드는 단계고, 세 번째는 다른 작품의 레퍼런스를 근거해서 작품을 만드는 단계다. 카피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것으로 만드는 여러 작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같은 장르의 다른 이야기를 써보거나 스타일을 흉내내거나 팬픽션도 이쪽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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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ndug.bsky.social
난 이게 한국의 '(제로보드에서 시작한) 게시판 문화'가 원인이라고 보는데,

게시판과 (해외의) 쓰레드 문화의 차이는 반론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부분에 있음. 즉 내가 'A는 b, c, d, e의 이유로 개새끼다'라고 주장했을 때, 독자는 이 'b, c, d, e'의 근거를 (개별 탄핵하든 말든 총체적으로) 'A가 개새끼'라는데 동의하게됨.

반론으로 이게 아닌게 밝혀져도 'A는 개새끼'라는 주장과 인식 자체는 남아서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침.

반론의 성립이나 원 주장의 탄핵 자체가 불가능하고, 이 인식이 고착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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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걸 대략 사고실험으로 해볼 수 있는데,

20~30대의 우경화라는게 그 세그먼트 안에서의 20~30% 라고 할 때, 전체의 비율에서 보면 3~4% 밖에 안 될 수 있죠.

문제는 시간이 간다는 거죠. 지금 우경화된 세대가 계속 살면서 유지될 것이라(90%?) 이 둘이 기득권 세대가 될 것이고 장기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이 안 되죠.

우리가 그걸 20년 전에 이명박 때 간과했던 것이죠.
dottwinial.bsky.social
“젊은 세대의 우경화“는 백 명 중에 열명이 그런 척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거라니까요? 그걸 냅두면 진짜로 우경화가 시작된다는 건 동의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미 우경화 되어서 고칠 수 없디, 좌절하거 냉소하자“ 이런 태도는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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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pizzapower.bsky.social
오늘 야생 포유류가 사냥하지 않을 땐 뭘 하는지 설명한 글을 봤는데, 비인간동물들도 새끼랑 같이 장난을 치거나 다른 종이랑 싸움 놀이를 하는 식으로 놀이를 한다고. (고양이만 봐도 알 수 있긴 하지만)
그런 건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시 우리 삶엔 놀이와 예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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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쬐끔' 들어간다곤 생각해서 언급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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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laznied.bsky.social
애초에 사변소설은 SF에서 S가 묽어지는 경향 가리킨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SF나 판타지 제외한 순수 사변 소설은 보르헤스 정도 생각나고요... 사변성은 두 장르를 묶어 부른다기 보단 앞서 말했듯 각 장르에서의 특정한 방향성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미스터리가 사변소설에 들어갈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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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소설은 판타지와 SF와 미스터리를 크게 아우르지만, 달리 말해서 판타지와 SF와 미스터리를 제외하는 경우에 사변소설에서 무엇이 남는가 싶기도. 그러니까 사변소설이 몇 가지 장르를 묶어 부르는 '사변성'이라는 공통 특성을 지칭할 뿐이고 누군가 그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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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inan.bsky.social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도 마찬가지로, 미스터리 안 좋아하면 굳이 이런 책을 쓰지 않는다. 차페크의 소설이 미스터리 장르를 분해하고 작위성을 폭로하며 ‘사건’이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이 소설들은 애초에 미스터리 잡지에 실렸으며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읽혔다. 미스터리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작업은 이 장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스터리(특히 고전적인 탐정소설)의 허위가 정말로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는 의심하면서 소설을 읽지만 실은 깜빡 속아넘어가길 고대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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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을 내세우는 고전적인 미스터리 소설들은 독자와의 정정당당한 정면승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무대는 작가에 의해 작위적으로 꾸며진 것이다. 독자는 오로지 작가가 서술하는 것만 볼 수 있다. 사실 독자는 마술쇼 관객처럼, 한껏 의심하면서도 실은 기꺼이 속으러 가는 사람이다. <잃어버린 편지>는 뒤팽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한다. (근데 탐정이 가짜이며 그들의 추리는 말이 안 된다는 얘기를 제일 좋아하는 것도 미스터리 작가/독자인 듯. 등장인물이 홈즈 욕을 한다? 미스터리 소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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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구조는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차페크의 소설에서 탐정의 번뜩이는 통찰 따위는 전부 착각에 불과하다. 그는 미스터리의 치장을 벗겨내는 데 열을 올린다. 필적 감정사의 과학적인 추리는 엉뚱하게 작용하고, 박사가 사건을 해결한 것은 매우 우연적인 일이다. 오히려 점쟁이 노릇으로 아가씨들에게서 복채를 뜯던 중년 여성의 어설픈 카드점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나 필히 우연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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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아내다. 아내는 남편이 밤중에 서재에서 일하던 모습을 봤을 뿐이다. 장관은 아내의 말을 부정하지만 편지는 정말로 그가 집었던 책 사이에 얌전히 꽂혀 있었다. 하지만 편지 수색을 위해 여러 인력이 동원되었던 이상 자기가 그냥 깜빡했을 뿐이라고 고백할 수는 없다. 자신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장관은 자기가 편지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고,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의 말은 뒤팽의 추리와는 달리 변명과 허세에 불과하다. 소설 속 ‘편지 도난 사건’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건, 트릭, 추리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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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총동원해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도둑맞은 편지>와 비슷하다. 장관이 편지를 숨긴 범인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편지는 그의 서재에 평범하게 꽂혀 있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편지>의 사건은 시시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고로 밝혀진다. 이 소설에서 편지를 잃어서 난처해진 피해자는 장관 자신이다. 그는 자료를 찾다가 무의식중에 그 책에 편지를 끼워뒀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까먹고 편지를 도난당했다고 여겨 사태를 심각하게 만든다. 기발한 범죄자는 없다. 특별한 관찰자나 명쾌한 논리도 없다. 편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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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의견을 설파한다. 이 대화는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사건의 진상이 시시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한껏 치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뒤팽이라는 탐정이 평범하게 어리석은 무리와는 달리 날카롭고 특별한 관찰자라는 인상을 준다. 경찰 같은 공무원은 감히 그에 견줄 수 없다. 장관은 수학자이자 시인으로 경찰의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영리하게 편지를 숨겼지만 뒤팽의 눈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반면 <잃어버린 편지>에는 뒤팽 같은 특출난 사람은 없다. 사실 차페크의 소설에는 착각, 실수, 오해가 가득하다. 편지가 갑자기 사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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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야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뒤적이다가, 카렐 차페크의 미스터리 단편집 다시 읽음. 미스터리 잘 아는 사람의 메타적인 안티 미스터리라서 신나는 책이다. <잃어버린 편지> 보고 내친 김에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도 다시 보니 역시 대놓고 패러디라 너무 웃긴다.

(스포일러)
<도둑맞은 편지>의 장관은 훔친 편지를 뻔히 보이는 곳에 숨긴다. 사람들이 너무나 확연하게 보이는 것에는 오히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맹점을 이용해서. 진상은 간단하지만 이를 밝히기 전까지 뒤팽은 수학자와 추상논리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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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성립은 해당 장르에 대한 낭만(기대지평) 안에서 성립이 되는데 사변소설 그 자체가 어떠한 낭만을 형성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물론 사변소설 자체가 이런 맥락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니까 전부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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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면 누가 사변소설이라는 걸 찾아 읽느냐는 것이다. 판타지면 판타지, SF면 SF지. 첫 번째는 사변소설은 범주가 너무 넓고, 두 번째로 장르가 가지는 도상(드래곤, 광선검, 탐정 등)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다(이 부분은 민담형태론의 문제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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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소설은 판타지와 SF와 미스터리를 크게 아우르지만, 달리 말해서 판타지와 SF와 미스터리를 제외하는 경우에 사변소설에서 무엇이 남는가 싶기도. 그러니까 사변소설이 몇 가지 장르를 묶어 부르는 '사변성'이라는 공통 특성을 지칭할 뿐이고 누군가 그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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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모르면 LLM 사용의 효용도가 떨어지는데, 글쓰기를 알면 LLM을 쓸 필요가 없음. 결국 LLM은 AGI 도달 이전까지는 제한적으로만 쓰게 될 것(그리고 AGI 도달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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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건강하게 불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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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행복하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