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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만드는 삼반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노랑봉투법 제정하라. 기업살인법 제정하라. 안전운임제 부활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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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금리 내릴거라는 추측으로 버블처럼 빵빵 부풀어 있었는데 트럼프가 대중국관세 100프로 더 올릴거라고 해서 터진거임. 보나마나 경제 타격이 상당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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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코인 폭락이 문제가 아니고 미국은 메인 주식시장이 터졌어.. 내 은퇴 계좌도 박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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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출세한 글자가 있다면 아마 백성民일 듯. 눈을 찔리는 노예나 포로를 뜻하던 단어에서 나라의 근간이자 주인으로 늬앙스가 변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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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부는 평생을 세계를 여행을 하며 보냈고 아이는 가지지 않았습니다. C.R. 애덤스는 1965년에 사망했고 레이첼 블로젯 애덤스는 1982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웰슬리 대학에 '블로젯 펀드'를 만들어 수익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도록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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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드클리프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가며 대학원 과정을 거쳐 1919년 석사, 1921년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1922년 같은 수학자인 C.R. 애덤스와 결혼합니다. 이후에도 래드클리프에서 계속 여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도 미분방정식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2차대전중에는 정부에 관련된 일을 했지만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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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은 레이첼 블로쳇 애덤스의 탄신일입니다 en.wikipedia.org/wiki/Rachel_... 1894년생 수학자로 래드클리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첫번째 여성입니다.
191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웰슬리에 진학, 수학과 라틴어를 전공했습니다. 셰익스피어 학회와 학교 오케스트라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성적이 우수해서 1914년 웰슬리 장학금을, 1915년 듀란트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1916년 졸업후 캐나다에서 교사생활을 잠시 한 뒤 1918년 메사츄세츠주로 돌아왔습니다.
Rachel Blodgett Adams - Wikipedia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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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보어전쟁이 터지자 케이프타운으로 가서 간호사 일을 자원했습니다만 1900년 6월 3일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합니다. 죽을 당시 '동물처럼' 약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누구의 간호도 받지 않고 홀로 죽었다고합니다. 그 때 나이 37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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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남편없이 홀로 아프리카대륙에서 활동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카누를 타고 가봉 오고우에강을 거슬러 올라갔고 해발 4천미터의 카메룬산을 올랐습니다.

1895년 영국으로 돌아오자 기자들의 취재세례를 받으며 유명인이 되지만 그녀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신여성New woman이라 칭해졌기 때문이죠. 당시 영국 서프라제트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참정권 운동과는 거리를 멀리합니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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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8월 17일 시에라 리온에 도착, 앙골라의 루안다까지 갑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인들을 그들만의 문화를 보존해줘야한다며 선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죠.예를들어 개종한 아프리카인 남편은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아내들과 아이들을 내쫓았고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와 출판계약과 지원을 얻은 그녀는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번엔 선교사 메리 슬레서와 함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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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식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에서 홀로 공부했다고합니다.
간호사 교육을 받고 꿈꾸는 아프리카 탐험을 떠나려고 생각했지만 부모를 모두 간병때문에 미뤄야했죠. 1892년 몇 달간격으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유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그 돈으로 아프리카 탐험을 떠납니다. 당시에 남편없이 아프리카에 가는 여성은 거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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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은 메리 킹슬리의 탄신일입니다 en.wikipedia.org/wiki/Mary_Ki... 1862년생 과학저술가, 탐험가, 민족지학자입니다. 아버지 조지 킹슬리는 의사였고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는 북미에 갔을 때 그 곳에서 커스터의 수Sioux족 학살사건을 목격할뻔하다가 날씨가 나빠 같이하지 못했다고합니다.
영국에 남은 가족들은 조지 킹슬리가 설마 학살에 참여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다는군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이런 서구제국주의의 원주민학살 사건을 듣고 메리 킹슬리가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됩니다.
Mary Kingsley - Wikipedia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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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너무... 그래... 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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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키타하라 미노리가 근대 일본의 일부일처제 운동의 역사에 대해 논하며 미국 금주 운동가의 연설을 계기로 설립된 일본의 기독교계 여성단체인 矯風会를 페미니즘의 문맥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도 그렇고 -물론 공창제 폐지나 일부일처제 실현과 같은 운동 기조가 그렇게 평가할만하지만- 기본적으로 좀 크리스찬적인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물론 본인도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었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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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우에노 치즈코식 '이기는 페미니즘'이 왜 인기가 있었는지, 우에노 치즈코가 TV 매체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인기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루카 요코의 <도쿄대에서 우에노 치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한국어판 제목은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이 책 제목이 딱 저런 심리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고.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후반부에 우에노 치즈코가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추천한 걸 비판하는 데서 한방이 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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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움진리교나, 고베 연속 아동 살상 사건, 원조교제 붐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 세기말 분위기 속에서 분투하는 걸로 느껴지긴 했는데 미야다이 신지가 이후에 천황제에 빠지기도 했고 오컬트적인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니 이 평이 상당히 말이 된다는 생각이.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날카로운데 망언이라고 할만한 발언 -2017년 도쿄신문에 일본인은 다문화공생을 견딜 수 없으니 이민을 받는 건 무리, 평등하게 가난해지자고 함-에 대해 비판과 우에노 치즈코 제자들의 침묵을 비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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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또다른 재미로는 거침없는 인물평이 있는데 미야다이 신지, 우에노 치즈코, '앗키'라는 애칭으로 불린 아베 신조의 아내 아베 아키에 등 다양한 인물에 대해서 정말 거침없이 말함.

미야다이 신지에 대해서 크리스찬인 데서도 보이듯이 오움진리교처럼 완결된 가르침을 따라가고 싶어하는 성향의 사람이라 필사적으로 컬트에 빠지지 않으려고 이론적인 장치를 여러가지로 만들었고 그 중 하나가 자기탐구에 빠지지 말고 원조교제하며 부유하듯 살아라 이런 이론 아니겠냐고.
미야다이 신지가 90년대에 이상한 소리 많이 했던 거 생각나는데 당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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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하라 미노리는 성 표현, 성매매 문제를 일본사회와 역사라는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조닌문화와 유곽문화 속 성 표현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 부분도 일본 저자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편이라서 좀 신선했다.

현대 일본의 성 표현이 에도시대 조닌문화의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사실 이 문화 자체가 상당히 특수한 맥락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대체로 여기에 둔감한 듯. 반대로 한국인이 보면 유교적 문화규범에 어긋나 상당히 기이하게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