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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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인용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요. 마음 편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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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블루스카이에 짧고 별것 없는 글을 쓸 때조차 문장을 한 번에 제대로 쓸 수 없는 걸까요. 게시글 지울 때마다 좋아요 눌러 주신 분들께는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좋아요 숫자를 확보하는 것보다는 꼴사나운 문장이 들어간 게시물을 발견할 때마다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이 제가 이곳에서 정신 건강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수제 게시글을 생산하는 데에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오니 모쪼록 양해 부탁드려요.

(이 글도 두어 시간 뒤에 다시 보면 분명 어딘가 마음에 안 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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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감시자들 (2013, 한국)

제가 본 한국 영화 중 2000년대 홍콩 영화의 날렵함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작품입니다. 두기봉의 제작사인 밀키웨이 이미지에서 만든 〈근종〉의 리메이크지요. 원조의 맛을 낼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풍부한 서울 로케이션 속에 당대 홍콩 영화의 중언부언하지 않는 화술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결과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설명 하나 없이 다짜고짜 시작해서 영화 제목이 뜰 때까지 무려 21분을 마치 하나의 시퀀스처럼 끌고 가는 도입부는 요즘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죠. 이런 것도 만들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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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블라인드 (2011, 한국)

한국 영화계(감상자 포함)는 감독이 유명하지 않고 규모도 어중간하고 흥행 성공 여부도 잘 모르겠고 출연 배우의 인기도 애매한 기성품 냄새 나는 장르 영화의 성취를 발견하고 기억하는 데에 무심한 편인데요, 저는 업계의 건강을 위해서는 봉준호, 홍상수, 이창동 등을 칭송하는 것보다도 김하늘이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는 시각 장애인을 연기하는 이 스릴러가 〈어두워질 때까지〉는 물론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역에까지 도전해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기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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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어두워질 때까지 (Wait Until Dark, 1967, 미국)

오드리 헵번 저도 좋아합니다만 제가 선호하는 출연작은 한국에서 오드리 헵번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꼽히는 영화들은 아니에요. 오드리 헵번이 그리 크지도 않은 집 안에서 잔인무도한 범죄자를 상대하는 시각 장애인을 연기하는 이 스릴러가 얼마나 재밌는지! 희망을 하나씩 꺾으며 거듭 궁지로 몰아넣는 가혹한 전개와 절체절명의 위기를 꾀와 용기로 돌파하는 주인공의 주체성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조마조마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힘이 샘솟는 기분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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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뒤틀린 신경 (Twisted Nerve, 1968)

〈킬 빌 Vol. 1〉에서 엘 드라이버(대릴 해나)가 혼수 상태에 빠진 브라이드(우마 서먼)를 암살하려고 간호사 복장을 하고 병실로 향하며 부르는 휘파람 있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 〈택시 드라이버〉 등으로 유명한 대 작곡가 버나드 허먼이 바로 이 영화를 위해 지은 곡입니다. 저도 쿠엔틴 타란티노 덕분에 알게 됐는데 이십이 년이 지난 지금껏 원본을 확인하지 못했네요. 영국스럽게 변태적인 스릴러가 아니겠나 기대하고 있어요.
Twisted Nerve whistling scene (better quality)
YouTube video by titanb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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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를 먹도록 홍콩에 중고 거래 대신해 줄 지인 하나 없고 뭐 했나. 고작 50 홍콩 달러면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 홍콩판 블루레이 중고 신품을 살 수 있는데! (일본어를 익혀라,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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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동부 저 멀리 (Way Down East, 1920, 미국)

D. W. 그리피스라면 교과서적인 의무감에서 〈국가의 탄생〉과 〈불관용〉을 언급한 뒤 〈흩어진 꽃잎〉을 조심스레 덧붙이는 정도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합니다만, 저는 〈풍운의 고아〉와 〈동부 저 멀리〉, 특히 〈동부 저 멀리〉를 제일 좋아해요. '클로즈업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편적인 기법이 아니라 실은 릴리언 기쉬의 얼굴에만 허용되는 기법이 아닐까?' 싶은 굉장한 클로즈업이 있고, 클라이맥스의 인명을 도외시하는 스턴트도 잊을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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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파괴를 외쳐라 (Cry 'Havoc', 1943)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전쟁 영화인데 태평양 전선의 바탄반도에 있는 야전 병원에 파견된 열세 명의 미국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소개만으로 보고 싶더라고요. 평론가 제임스 에이지가 "진심 어린 5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든 진심 어린 4류 영화"라면서 나쁜 점들이 아주 많음에도 바로 그 진심 때문에 여러 차례 감동했노라고 고백했던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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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진저와 프레드 (Ginger e Fred, 1986)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다른 영화는 거의 다 복원되어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것만은 아직이에요. 하여간 펠리니가 연출했고 줄리에타 마시나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연을 맡았는데 제목이 〈진저와 프레드〉인 영화를 보고 싶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죠.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 전기 영화는 아니고요, 왕년에 진저와 프레드를 흉내 내는 공연을 했던 콤비가 결별했다가 TV 출연을 위해 삼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얘기래요. 설정만으로 울릴 작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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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언덕 (The Hill, 1965)

아직 보지 못한 시드니 루멧 감독 영화 중에서 제일 보고 싶은 영화예요. 제2차 세계대전 말 영국군 군 교도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알력을 다룬다는 것과, 제목의 '언덕'이란 이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무의미하게 계속 쌓아야만 하는 피라미드 모양의 야트막한 언덕을 가리킨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이미 무시무시하지 않은가요? 그런 설정으로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니, 보기 전부터 이미 모골이 송연하고 진이 빠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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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붉은 텐트 (Красная палатка / La tenda rossa, 1969)

북극 탐험에 나선 비행선 이탈리아호의 조난과 생존자 구조를 다룬 소비에트-이탈리아 합작 영화입니다. 〈학이 난다〉, 〈부치지 못한 편지〉, 〈나는 쿠바〉의 미하일 칼라토초프 감독이 또 미친 듯이 카메라를 휘두르며 비행선 추락 장면을 찍었다니 궁금하잖아요. 숀 코너리를 로알 아문센으로 기용한 황당한 캐스팅으로도 모자라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까지 나오는데! 그리고 소련판과 국제판의 길이가 많이 다른데 국제판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았대요!
Ennio Morricone-The Red Tent/La Tenda Rossa
YouTube video by Ennio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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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군중 (The Crowd, 1928)

〈바람〉과 마찬가지로 '결국 제대로 복원되어 출시될 수밖에 없는 걸작 무성 영화'죠. 실은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몰라요. 카메라가 1920년대 후반 뉴욕에서 한 초고층 건물의 외벽을 타고 허공으로 솟구쳐 무수한 창문 중 한 창문으로 들어가서 바둑판처럼 배열된 책상에 앉아 일하는 무수한 사무원들을 훑다가 그중 한 사람에게 도착하는 장면 하나만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하는 사적인 미국 영화 여행〉에서 보았을 뿐이에요. 그것만으로도 간절히 보고 싶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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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저를 반겨준 것.

그런데 제가 선호하지 않는 커다란 글씨에 폭이 좁고 어절 단위로 줄을 바꾼 형태의 책이어서 조금 실망스럽기도 해요. '이 책만큼은 후원해야지!' 하는 마음에 냉큼 북 펀딩에 참여했지만 만약 펀딩 없이 바로 출간되어 미리보기로 책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더라면 구매를 꺼렸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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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네. 요즘 세상에 어떻게 GS25에서 데자와 240ml 한 캔을 9백 원에 팔지? 딱히 할인 안내도 없던데? 땡 잡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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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연휴 전보다는 즐거우신 거 맞죠...? LO 님 여행기에서 전해지는 스트레스 레벨이 평소 퇴근 부르짖으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여 제가 다 속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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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문은 고사하고 블루스카이 게시물조차 폰으로는 잘 못 쓰겠어요. 문장을 자꾸 고치는 타입이라서 더 그렇겠죠(<-지금 이 문장을 세 번 고쳤어요). 무엇보다도 폰으로도 기어코 『』,〈〉를 입력하려 드는 성미 때문에... 그래서 연휴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영화 여덟 편 보고 책 두 권 읽고 두 도시 방문하고 평소 못 먹던 것 먹었지만 게시물이 뜸합니다.
niknemnn.bsky.social
리뷰기록해보려고 레포브 깔아보긴했는데 폰에서만 쓸수있다보니가 손이잘안간다 장문을 폰으로쓰는게 영 성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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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집 책장이 꽂힌 십수 년 전이 샀던 책들 -> 고향 집 책장에 꽂힌 십수 년 전에 샀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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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보면 내가 연휴에 읽고 싶었던 책은, 특히 『표범』과 『타오』 뒤에 읽고 싶었던 책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같은 책은 아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접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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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무거워!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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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까치 판본은 처분했고 2005년에 마음산책에서 재간한 판본으로만 갖고 있는데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들어 펴는 순간 제가 왜 마음산책 판본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나아가 마음산책에서 펴 낸 책 전반을 꺼리게 됐는지 새삼 확인했어요. 무겁고 표지가 과하게 뻣뻣하고 폭이 애매하게 넓어서 들고 읽기 불편한 책을 만들기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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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지고 온 『표범』, 『타오』는 다 읽어서 다음 책을 찾아 고향 집 책장이 꽂힌 십수 년 전이 샀던 책들 훑는 중.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아직도 많이들 읽나요? 2000년대 초까지는 북유럽 + 여성 주인공 + 미스터리 + 사색적('문학적') 어조, 라는 드문 조합에다 까치에서 나온 정영목 역본이 절판되면서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걸작 대우를 받았는데 재간도 되고 북유럽/여성 주인공 미스터리도 많아지면서 요즘은 언급하는 사람이 드물어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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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심하게 뒤틀린 영화 중독자만의 감상 같긴 한데, 『타오』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449쪽에 달하는 장편이고 설정상 공간을 제약하는 유형의 미스터리가 전혀 아님에도 공간을 아껴 쓰려는 태도가 있었다는 거. 로케이션이나 세트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같은 공간을 새롭게 조망해 재활용하려는, 흡사 해머 호러 영화와도 같은 '경제성'이 흐뭇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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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익숙해져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국산 장르 소설, 특히 창작 SF/미스터리/호러 '불모지' 시절의 감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요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가 그 품질에 깜짝 놀라곤 해요. 김세화가 쓴 장편 경찰 수사 미스터리 『타오』도 그랬네요. 몇 달 전 『가연물』의 경찰 조직 묘사에 경탄했는데, 『타오』는 장편이라 아무래도 요네자와 호노부만큼 간결하고 밀도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외국 경찰물만의 장기이자 특권 같았던 영역을 이제는 한국 소설도 능숙하게 자기 것으로 다루어 내는구나, 하고 탄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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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용산 아이맥스에서만 볼 수 있다는 1.43:1 화면비의 효과를 가장 실감했던 것도 바로 그 장면에서였죠. 하지만 이후 다른 상영관에서 다른 포맷으로 다시 본 적이 없으니 과연 제가 느낀 감각이 세로가 더 긴 화면 구도 덕분이었는지, 유독 거대한 스크린의 크기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적당히 준수한 환경의 상영관이기만 하면 화면 위아래를 잘라 내어 만든 1.85:1 와이드스크린 포맷으로 보아도 똑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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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류승완이 사랑한 형사 영화"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블리트〉를 상영했어요. 류승완은 스크린으로 보니 완전 다른 영화 같더라면서, 자신과 함께 본 일행은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멀미가 나서 결국 구토하고 말았다고 했어요. 그때는 과장이려니 했죠. 그런데 며칠 전 〈One Battle After Another〉를 용산 아이맥스에서 보는데 예의 추격 장면에서 롤러코스터 탄 것처럼 몸이 물리적으로 훅훅 꺼지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문득 그 〈블리트〉 일화가 과장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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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버스터 키튼 탄생 130주년이었음에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굳건한 해롤드 로이드(안경) 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