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형 '라쿤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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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 덱스터의 엽편소설(짧은소설, 초단편소설)계정입니다. 가벼운 SF와 판타지 장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초단편 소설집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드래곤 역시>, <잼 한 병을 받았습니다>, <러브 앤 티스>를 쓰고, 앤솔러지 <요괴사설>에 참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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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계속 쉬지 않고 부풀어오르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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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아기는 시아비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찢어지듯 재껴지는 턱주가리 안에 이제 혀는 보이지도 않는데, 시아비는 계속해서 웃어재낀다. 시아비의 배는 금방이라도 아이를 낳을것 같다. 자신이 본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수 없기에 며늘아기는 이 모든게 꿈이기를 바라며 뒷걸음질 치다 그대로 도망질 하였다.

​최진사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최진사에게 이제 며늘아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바를 이미 이루었지 않았는가? ​최진사는 계속하여 웃어 재꼈다.

으히히히히히히히히! 아하하하하하하하! 되았다! 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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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알자 몸이 바둥거렸다. 키득키득 거리며 최진사의 몸이 바둥거렸다. 하이얀 달빛 아래에 그만큼 하이얗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최진사가 웃어재끼며 소리쳤다.

으히히히! 아이다! 안에서 쿵! 쿵! 차는걸 보니 분명 사내다! 사내아이다! 됐다! 되았다! 이제 되았다! 우리집 대를 이을 장손이 생겼다! 이제 되았다! 이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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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으로, 콧구멍으로, 들어갈 곳이 없으니 눈구멍으로, 귓구멍으로. 꿈틀꿈틀대며 혈관을 따라 기어오르는가 싶더니 뱃속에 가득히 아득히 들어간다. 배가 오른다. 최진사의 배가 오른다. 굽어버린 등이 더 굽어보이게 보름달만히 부풀어 오른다. 적삼 고름이 풀리며 드러나는게 흡사 산달이 얼마 안남은 산부같다. 안에서부터 꿈틀대다. 꿈틀대다못해 발로 걷어차는 것 같다. 최진사는 얼마 남지 않은게 하지가 아님을 분명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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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가시가 걸린듯, 고깃덩이가 걸린듯 울컥대는 느낌이 한가득으로 목을 조인다. ​그것이 최진사의 목을 파고들었다. 안에서부터.

이후 최진사의 몸도 숫제 금방의 그것처럼 꿈틀댄다. 꿈틀대더니 뒤로 굽는다. 늙은 남정내의 등이, 초생달마냥 뒤로 굽는다. 뒤로 굽어 머리부터 샘물에 쳐박힌다.

최진사는 소리를 지른다. 숨이 막히니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꺾인 등은 말을 듣지 않고, 열린 입으로는 샘물이, 낮의 온기와 사람 하나의 체온을 머금어 민적지근하기 그지없는 샘물이 쏟아지듯 들어온다. 샘물과 함께 그것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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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그러자 반짝인다. 목구멍에서, 샛바닥에서 끌려나온 길고 긴 무언가가 달빛에 반짝인다. 머리칼 같기도, 새하얀 지렁같기도. 최진사의 눈에 핏기가 쏠리고 검은자가 열린다. 거무튀튀하고 말라 비틀어져가는 거죽손에 잡힌 하이얀 그 뭔가를 보았다.

휘리릭!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손에서 미끌어져 꿈틀대며 최진사의 입으로, 샛바닥을 타고,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목구멍 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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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결국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밀어 재껴졌다. 얼마 남지 않은건 분명 하지가 아니었음을 최진사는 깨달았다. 민적지근한 더위가 축축히 옷적삼을 다 적시고 난 뒤였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샘에 최진사의 몸뚱이가 흥건히 들어가게 되었다.

꿈틀!

그리고 최진사는 목구멍 안에서 무언가 간질함을 느꼈다. 밥먹다가 섞인 머리카락이 목구멍에 걸린듯, 젊었던 시절 한밤중에 무릉댁의 머리털이 목구멍에 엉킨듯. 간질간질한 느낌이 길게 이어져 샛바닥까지 꿈틀댄다. 급히 손을 넣어 그 느낌을 잡아 당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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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을 듯이 바라본다. 잡아먹을 듯이 흔든다. 마을 제일 양반이라던 최진사가, 시아비가 개처럼 바닥에 기어붙어 그르릉 거리며 저잣거리 개뼉다구를 물고 늘어지듯이 자기 손목을 놓아주지를 않는다. 홱! 홱! 뒤집힐듯 넘어갈듯 검은자가 흰자와 번갈아가면서 자기를 바라본다. 며늘아기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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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년! 오라질년! 잘먹고 잘먹어서 내 아들놈까지 잡아먹고 이리도 살이 쪘느냐!

최진사는 소리를 지르며, 질렀다. 노기 어린 손목이 손목을 붙잡고 흔든다. 며늘아기는 당황한듯, 놀란듯, 겁에 질린듯, 울듯, 울듯, 흔들리는 손목과 뒤집혀가는 시아비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이리돌리고 저리 돌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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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결국 나오고 말았다. ​

못난년! 못쓸년! 입혀주고 먹여주고 사내까지 주었더니 자식하나 나아주질 못하느냐! 그놈의 새끼 하나 낳아주면 무어가 안된다더냐?! 마셔라! 마시란 말이다!

목에 엉켜있던 가래를 토해내듯이 나오고 말았다. 기어이 나오고 말았다. 체면 때문에 뱉지도 못하고 끙끙 앓으며 삭혔던 좀심이 누렇게 튀어나오고 말았다. 최진사의 손이 며늘아기의 손목을 붙잡고 흔들었다. 달만큼이나 하얀 손모가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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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최진사의 얼굴거죽이 훍! 훍! 꿈틀대었다. 꿈틀대는 거죽이 거친 바람과 그의 바람을 불어냈다.

아이... 사내놈만... 제발 장손 하나만 낳아다오!

그러나... 며늘아기의 대답은 최진사가 바람에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싫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아버님. 무섭습니다. 물 안에 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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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며늘아기가 자뻐진지 알 턱이 없으니,​ 최진사의 얼굴이 떨렸다. 최진사는 쪼그려 앉듯이, 앉은 뒤에는 엉금엉금 기어가듯이 다가가 며늘아기의 두손을 꼭 잡고 말했다.

왜그러느냐? 혹, 무릉댁이 그동안 너를 서운하게 한 것 때문에 그러느냐? 미안하구나. 내 미안하구나. 내 집에 돌아가면 무릉댁은 쳐버리마. 무엇? 무엇, 필요한게 있느냐? 무엇을 주랴? 내 소도 주고 땅도 주마.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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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아기는 시아비의 명대로 물을 마시려 샘을 한움큼 손으로 떴는데, 손바닥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보았다. 실오라기 같은게, 하늘하늘 춤드는게 물풀같은게.

산중이라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며늘아기는 눈에 힘을 주고 한동안 바라보았는데, 구름에 숨어있던 달이 비추며 그제야 그 모습이 보였더랬다.

​​반짝반짝, 아주 반짝반짝, 빛나고 하늘하늘 춤추는 것이 무슨, 새하얀 두손 위로 물이 반이오, 지렁같은 벌레가 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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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늘아기가 화들짝 놀라 손을 내 팽개치고 뒤로 물러서서 말했다.

모...못하겠습니다 아버님.

최진사는 며늘아기를 다시 채근하여 보았다. 하지만 고개가 도리도리 돌아가고 눈에 눈물이 한움큼 뭉쳐 또르르 흘러내렸다.

채근이 안되니 어르고 달래보았다. 아둔하기 짝이없는 아이니 살살 달래보면 될 것 같지만 좀체 말을 듣지 않았다. 며늘아기는 고개를 계속 가로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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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무릉댁 말이 맞다. 참으로 맞았다. 동네 천것들이 떠벌린 말이면 또 어떠한가? 분명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하지가 아닌 것을... 최진사는 숨을 깊게 쉬었고, 장단지에 다시 힘을 다시 주어 어깨에 들쳐맨 이불보의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러자 이불보 속에 며늘아기가 잠깐 꿈틀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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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천것들이 떠벌린 말이면 또 어떠합니까? 이대로 집안 장손이 끊기는 것을 볼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최진사는 그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어깨가 무거웠다. 젊어서 무릉댁을 얻은 기억에, 들쳐매는건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제는 걸음마다 발이 미끌거렸다. 머리가 지근 거리는 것도 분명 하지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 것이었다. 목덜미가 훅훅 볶았고, 땀이 그 위를 돌돌돌 굴러내려가 옷깃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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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무릉댁이 최진사에게 마을 아낙들의 말을 물어온게 보름 전이었다. 마을 뒷산에 못이 있는데, 여름의 열기가 목덜미를 닳아 오르게 때, 밤중에 올라 그 물을 마시면 아이가 생긴다는 말이었다. 허황된 이야기다 못해 듣는 것만으로도 집안에 누를 끼치는 듯 하여 그때마다 무릉댁과 함께 밖으로 물렸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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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허나, 양반됨으로, 한 집안에 어른되고 아비 됨으로 어찌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최진사는 그래서 그 역할을 오롯이 무릉댁에게 맡겼다. 그런 연유로 무릉댁은 최진사의 말없는 비호아래 하루가 머다하고 며늘아기에게 날이선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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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년. 네년이 우리 아들을 잡아먹었구나.

무릉댁이 틈만나면 며늘아기에게 미움질 하는 것을 애써 말리지 않음은 그런 이유가 있었다. 최진사가 보기에 며늘아기는 몹쓸년은 아니지만 못난년이기는 했다. 혈기 좋은 젊은 것들끼리 한방에 넣어두면 엄동설한 밤을 새워가면서라도 몸으로 열을 내어 아이를 만들어야하지 않는가? 아들이 몸이 연약하기로서니 그정도는 잠깐이라도 불태울수 있게 지아비를 내조하는 것이 안주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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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밖에 없었다. 집안에 씨가 없었다. 3대 독자 집안에 장손이 없었다. 늘그막에 낳은 아들놈이 병을 얻어 누워버렸다. 의원이 와서 앞으로 사내구실을 못할거라 했으니 그 속에 간장이 뒤틀렸다. 무엇을 잘못했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고민을 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는 답에 속을 끓으니 애먼 며늘아기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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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정 끝에 무릉댁을 방 밖으로 물리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입씨름을 한게 어느덧 한번, 두번, 그리고 세번... 없는 호랑이도 세사람이 입을 맞추면 생긴다고 했던가? 실없는 말이란 것도 듣고 듣고 또 들으니 최진사도 숫제 마음 한쪽이 동해옴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실로 말이란 것은 참으로 힘이란게 있어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함이 사실이렷다...

아니, 무릉댁의 말이 아니었다. 기실, 이미 오래전부터 최진사의 마음은 들리고, 놓이고 있었으니, 그것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최진사, 그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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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설화

장손

목가가 훅훅 볶듯이 달아올랐다. 달아오른 살위로 텁텁지근한 땀이 또르르 흘러내려갔다. 최진사는 무릉댁과 말한 것을 떠올렸다. 분명 마을 사람들 들으면 집안에 누를 끼칠 일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무릉댁은 한마디를 지지 않고 조목조목 따져가듯이 말했다.

동네 천것들이 떠벌린 말이면 또 어떠합니까? 이대로 집안 장손이 끊기는 것을 볼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어허, 이 사람이! 듣기 싫으네! 물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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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원아워 시리즈 많이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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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더 즐겁게 보낼 최고의 선택!

저스트원아워 <역사는 비극으로 시작해 희극으로 끝난다>(홍락훈 저)와 <변칙개체 산타클로스>(비티 저)가 있습니다아~😁

모두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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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당신이 절 이렇게 만들었으니까요.